歌舞伎(かぶき)
일본 고유의 연극으로, 전통예술의 하나. 중요무형문화재 (1965年4月20日 지정)
固有 こゆう 고유
演劇 えんげき 연극
伝統 でんとう 전통
芸能 げいのう 예능
重要無形文化財 じゅうよう むけい ぶんかざい
(1) 어원
가부키란 말은 '머리를 기울이며 맘대로 춤을 추기'란 의미를 가진 '가부쿠'(カブク, 傾く)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가부키(歌舞伎)란 단어는 후대에 한자를 갖다 붙이면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2) 역사
분쿠(文楽), 즉 닝교조루리(人形浄瑠璃, 일본의 전통 인형극)와 견주어지는 에도 시대의 민중극인 가부키는 17세기 초엽에 생긴 것으로 그 모태는 중세 말기부터 서민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후류(風流)라고 하는 민속예능 내지 풍속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립·발전의 과정은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었죠. 각각의 그 시대 시대에 서민의 마음과 감각을 반영시키면서, 한순간도 정지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흡수·소화하여 생성·변모함으로써, 오늘날 볼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것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전대의 무대예술인 노오와 교겐, 그리고 병행해서 발전한 닝교조루리가 그 성립·성장에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부키의 역사는 크게 그 성장의 모습을 창생기, 확립기, 발전기, 난숙기, 계승기 이렇게 다섯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창생기(倉生期:1603-51)
위의 그림, 왼쪽에서 네 번째 병풍에서 칼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여인이 바로 가부키의 조상으로 알려진 이즈모노 오쿠니입니다. 교토의 기타노 신사(北野神社)에서 처음으로 염불 춤을 추어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고 가부키 춤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 1603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인된 무대예능이라면 궁중이나 대신사불각의 무악(舞樂)이나 신악(神樂) 및 노와 교겐 밖에 없었죠. 그러한 터에 여성의 예능집단이 몰려들고, 더욱이 가면도 쓰지 않고 다채로운 의상을 휘날리며, 풍만한 지체를 보이면서 노래하며 춤을 추니, 사람들이 그 처음 보는 광경에 흥분하고 기뻐 날뛰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가부키'라는 호칭도 바로 여기서 나오게 되었던 거죠.
그러나 여성예능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습니다. 교겐 계통의 원약(猿若)이라는 촌극을 곁들인 오쿠니 등의 여인 가부키는 전국을 뒤흔들었으나, 유녀(遊女)를 겸하고 있는 본래의 성격 때문에 미풍양속을 크게 어지럽게 하였다는 이유 등으로 1629년, 막부(幕府, 바쿠후)는 끝내 여자 예능인의 등장을 금지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메이지 24년 신파(新派)에서 여배우가 등용될 때까지인 262년간은 일본의 공인극장에서는 여배우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아름다운 소년의 노래와 춤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와카슈 가부키(若衆歌舞伎)였죠. 그러나 이것도 남색(男色:衆道라고도 하며 동성애)의 유행을 가져오고 그 폐단이 심하였기 때문에 막부는 또다시 전면적인 금지령을 내리게 됩니다. 오쿠니 가부키와 와카슈 가부키는 이렇게 탄압을 당하고는 나타나지 못하였으나 민중의 요구는 그치기 어려웠으며, 드디어 가부키는 형태를 바꾸어서 재흥, 바로 새로이 '극(劇)'으로서의 출발점에 섰으니, 그것이 '야로 가부키(野郞歌舞伎)'입니다.
② 확립기(確立期:1653-1724)
가부키의 재흥을 위하여 막부가 제시한 허가조건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배우의 앞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와카슈 모습이 아니게 나타낼 것, 또 다른 하나는 노래와 춤을 적게 함으로써 흉내 내기 교겐을 주로 할 것이었는데, 어느 것이나 다 선정성에 대한 규제였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죠. 이미 찰나적인 성적 매력에만 의지할 수는 없게 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가부키는 드라마로서의 내용에 충실, 그 무대표현의 정치(精緻)와 변화성과 규모의 확대, 연기의 사실성을 향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연극으로서는 플러스요인이 되었던 것이죠.
1670년대에 드디어 에도와 교토·오사카 등지에서 가부키 연기의 기초가 확고하게 다져졌고 대도구(大道具)가 발달하고, 노무대(能舞臺) 그대로의 형태였던 무대도 계속 확장되더니, 이윽고 화도(花道)를 파생시켰고, 반야외(半野外)였던 것이 전개식(全蓋式) 극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양식 모든 면에서 중세를 탈피하여 도쿠가와 시대의 독자적인 시민연극으로서 확립되어 갔습니다.
③ 발전기(發展期 : 1724-1803)
이 시기는 에도의 아라고도게이(荒事藝)의 예술적인 대성공이 한편에 있는데, 주로 인형세계에서 연발되는 명작 조루리가 작(作)·연출되어 공히 가부키에 전면적으로 채용되게 되어서 이른바 '기다유교겐'이라는 하나의 큰 블록이 형성되어 가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초기 30-40년간은 닝교조루리 쪽이 훨씬 우세하였습니다. 이는 위대한 지카마쓰의 극문학상의 업적이 그 원인(遠因)인데, 지카마쓰 사망 후 10년이 경과했을 때, 인형 조종사 요시다 분사부로(吉田文三郞)가 오늘과 같은 3인 조종 방법을 완성한 사실이, 인형극 발전의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정교한 인형은 인간에게 육박할 정도의 리얼한 표현력을 획득하고, 더욱이 인간의 현실성을 초월한 요미환상미(妖美幻想美)의 세계를 현출한다는 것이죠. 기다유(義太夫)가 연 다케모토좌(竹本座)와 거기서 갈라져 나간 도요타케좌(豊竹座)는 서로 경쟁적으로 조루리의 명작을 내었습니다.
④ 난숙기(爛熟期:1804-71)
1804년은 막부의 에도문화도 최후의 난숙기를 거쳐, 막부의 말기로 접어드는 기점이며, 4세 쓰루야남보쿠가 해학미가 가득 담긴 ‘텐지쿠토쿠베에(天竺德兵衛)’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해입니다.
1871년은 막부 말기의 가부키의 타성이 종국(終局)에 이르는 해이며 이 시기에는, 에도에서 가난한 서민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세정교겐(世情狂言)이 속속 생겨나오고, 요괴무용(妖怪舞踊)도 받아들여져 복잡한 무대기구, 트릭, 연출, 게자음악(下座音樂) 등이 매우 정교하게 완성되는 시대입니다. ‘텐지쿠토쿠베에’로 명성을 얻은 쓰루야남보쿠는 기발한 발상과 예리한 인간 통찰로 상가의 하층사회를 자유로이 그려냈으며, 1825년에는 집대성적(集大成的)인 명작 ‘시타니카이단(四谷怪談)’을 써냅니다.
⑤ 계승기(繼承期:1872-현재)
교토에서 서양의 입지전(立志傳) 작품의 극화가 상연된 것은 메이지 5년(1872)인데 그 후 극장은 양풍을 받아들여 확대되고, 문명개화나 서구화 풍속을 그려낸 작품이라든가 사실 존중주의 가부키교겐의 1종인 활력극(活歷劇) 등이 생겨났으며, 이윽고 정부가 중심이 되고 9세(九世)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郞)가 이에 호응한 연극 개량운동도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메이지 21년, 신파가 발생하고, 40년경에 신극운동이 일어나는 정황 속에서 가부키는 결국 신시대적 연극을 향한 자기혁명을 이룩함 없이 전통연극과 고전예능으로서 계승된다는 기본선(基本線)을 정하였습니다.
2. 가부키의 특징
(1)무대연출
가부키의 무대 연출에서 일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양식성입니다. 더욱이 대사는 리드미컬한 표현 형태를 취한 채, 소위 게자음악(下座音樂)을 수반하고, 무대 효과에 해당하는 비·바람·물소리, 또 눈 내리는 소리마저도 음악화해서 표현해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부키는 일종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단순히 양식적이라고 해도 그 연출 내용은 매우 복잡합니다. 연극이 진행 중인 무대의 어느 한 순간을 잘라서 들여다보아도, 배우의 개개의 모습으로부터 다른 배우와의 균형·위치, 또 의복·가발·소도구·무대장치 등과 어울려서 항상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게 만드는 것이죠. 앞에서 살펴 본 연극사(演劇史)가 보여주듯이, 민속예능, 노, 노교겐, 닝교조루리의 영향을 받아 그것이 가부키 속에서 발전해 감과 동시에, 가부키 자체에서도 시대의 움직임이라든가 배우·작가에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향을 지닌 연출이 생겨나고, 또한 이것이 전개되어가고 있습니다.
(2)배우
가부키는 본래 배우의 기예본위(技藝本位)의 연극입니다. 따라서 연출의 창조 과정은 개개의 배우들이 고안한 연출을 우선 존중하고, 이것을 주연배우가 하나의 앙상블로서 정리해 가는 것이죠. 이 점은 서유럽의 근대극의 연출자라는 제3자가 일관된 의도에 따라 통괄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쿠로코(黒子)
얼굴까지 가리는 검은색 복장을 착용하고 무대장치를 바꾸는 인물을 쿠로코라고 합니다. 그들의 활동은 실제로는 존재하나 가부키에서 검은색은 '무(無)'를 뜻하기 때문에 그 존재는 없는 것으로 설정되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 주는 것이 관객과 약속되어 있는 것이죠. 이런 특징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개 치는 인물을 쿠로코라고 하기도 한답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존재감 덕분에 일본만화나 게임 등에 자주 활발하게 등장하기도 하죠?
'초급한자 131~15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5. 合う 合わせる (0) | 2014.06.26 |
---|---|
147. 片思い (0) | 2014.04.26 |
146.食う (0) | 2014.04.25 |
145. 少々 (0) | 2014.04.25 |
144. 京阪神 (0) | 2014.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