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좋은 글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지영 센세 2011. 12. 7. 23:16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좋은 시& 좋은 글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위에 쓴 시 / 류시화   (0) 2011.12.07
눈꽃 아가 / 이해인   (0) 2011.12.07
절대신앙  (0) 2011.12.07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0) 2011.12.07
겨울 사랑  (0)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