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일본역사의 이해

일본단편소개 - 시멘트 통 속의 편지 ( 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

지영 센세 2009. 7. 28. 00:39

 

葉山嘉樹.hwp

시멘트 통 속의 편지


마쓰도 요조는 포대 가득 들어있는 시멘트를 들어붓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머리칼과 코밑이 시멘트 가루로 뽀얗게 뒤덮여 있었다. 그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철근 콘크리트처럼 코털을 딱딱하게 굳혀 놓은 콘크리트를 후벼 파내고 싶었다. 하지만 일 분에 일 입방체씩 토해 내는 콘크리트 믹서의 속도에 맞춰 일하느라 도저히 손가락을 콧구멍 속으로 들이밀 겨를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콧구멍에 신경을 쓰면서도 끝내 열한 시간동안 코 청소를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점심시간과 세시간 휴식때 두번 쉴 짬이 있었지만, 점심때는 배가 고파서, 휴식시간에는 믹서를 청소하느라 틈이 없어 결국 코에까지는 손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코는 석조 조형물처럼 딱딱해져있었다.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가 기진맥진한 두 팔로 들어부은 시멘트 포대에서 조그만 나무상자가 나왔다.


"뭐지?"


그는 조금 의아스러웠지만, 일일이 그런것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부삽으로 시멘트 됫박에 시멘트 양을 가늠해 가며 퍼넣었다. 그리고 통속에 시멘트를 쏟아 됫박을 비우고 곧장 부삽으로 다시 시멘트를  퍼올렸다.


 "아니 잠깐만, 시멘트 포대에서 상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는 그 조그만 상자를 주워 작업복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상자는 가벼웠다.


 "가벼운 걸 보니, 땡전 한푼도 안 들어 있는 모양이군."


 그는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그 다음 포대를 비우고 다음 됫박의 양을 가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윽고 콘크리트 믹서가 헛돌기 시작했다. 이제 콘크리트 작업이 끝나고, 하루 일도 끝나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믹서에 달려 있는 고무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대퉁 얼굴과 손을 씻었다. 그런 뒤 도시락 주머니를 목에 둘러메고, 오로지 한잔 마실 생각에 빠져 집으로 돌아갔다. 발전소는 거의 80퍼센트 정도 완성되었다. 그는 지나가는 발 밑으로는 기소(木會) 강이 하얀 거품을 머금은 채 짖어대고 있었다.


"제기랄, 못해 먹겠군. 마누라는 또 배가 남산만하지..."


 그는 집에서 오글거리고 있을 아이들이며, 이 추위를 무릅쓰고 태어날 아이며, 대책없이 아이를 낳아대는 마누라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일당 1엔 90전 중에서 하루에 50전 어치는 쌀로 먹어치우고, 90전으로 입고 생활하고....멍청한 자식! 어쩌자고 마실 생각이야!"


그러다 그는 문득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떠올렸다.


그는 상자를 꺼내 시멘트 가루를 바지 자락으로 비벼 털어냈다.


상자에는 아무런 글도 쓰여져 있지 않았다. 그런주제에 단단하게 못이 박혀있었다.


"무슨 꿍꿍이 속이야. 못까지 쾅쾅 박아 놓고."


그는 돌 위에 냅다 상자를 던져 부서뜨리려 했으나 생각처럼 쉽게 부서지질 않았다. 내친김에 짓뭉개 버리고 싶은 격한 감정이 일어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그가 주운 조그만 상자속에서는 헝겊조각으로 똘똘 만 종이가 나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는 N시멘트 회사에서 시멘트 포대 깁는 일을 하는 여공입니다. 저의 애인은 분쇄기에 돌을 집어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10월7일 아침 커다란 돌을 집어 넣던 그는 그 돌과 함께 분쇄기 안에 꼭 끼이고 말았습니다. 동료들이 그를 살려내려고 했지만 물 속으로 빠져 들듯 돌 아래로 제 애인은 가라 앉았습니다. 그리하여 돌과 애인의 몸은 서로 뒤엉켜 부서지며 빨갛고 자잘한 돌이 되어 벨트 위로 떨어졌습니다. 벨트는 분쇄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동철 탄환과 한 몸이 되어 잘게잘게 기계가 돌아가는 격렬한 소음에 섞인 저주의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부서져 갔습니다. 그리고 불에 달구어져 명실상부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혼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이제 애인은 모든 것은 시멘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은 이 넘마같은 작업복 쪼가리 뿐입니다. 저는 제 애인은넣은 포대를 깁고 있습니다. 제 애인은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 이 편지를 써서 상자에 담아 포대속에 살짝 집어 넣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당신이 노동자라면 나를 불쌍히 여기고 답장을 해주세요.


이 포대속에 있던시멘트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저는그걸 알고 싶습니다.


제 애인은 몇 포대나 되는 시멘트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걸 썼을까요?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아니면 건축업자입니까?


저는 제 애인이 극장의 복도가 되고, 대저택의 담이 되고 하는 걸 보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는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아니, 상관없습니다. 아무데라도 개의치 말고 쓰세요. 저의 애인은 어떤 곳에 묻히더라도, 그 장소에 따라 틀림없이 성실하게 자기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그는 성품이 반듯한 사람이었으니, 분명 그 나름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견실하고 남자다운데다 아직 젊었습니다. 이제 막 스물여섯이 되었거든요. 그 사람이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이에게 흰 수의를 입혀 주는 대신 시멘트 포대를 입히고 있군요! 그 사람은 관으로 들어가는 대신 회전 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가 어덯게 그 사람을 고이 보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서쪽에도 동쪽에도, 저 먼곳에도 이 가까운 곳에도 뿔뿔이 흩어진 채 묻혀 있는걸요.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해 주세요. 그대신 제 애인이 입고 있던 작업복 쪼가리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싼 헝겊 조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쪼가리에는 돌가루와 그 사람의 땀이 배어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 넝마 같은 작업복을 입고 그 얼마나 나를 꼭 껴안아 주었던지요.


 부탁입니다. 이 시멘트를 사용한 날짜와 정확한 주소, 또 어떤곳에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폐가 되지 않는다면 꼭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부디 몸 조심하세요. 안녕..





마쓰도 요조는 사방에서 콩이라도 볶듯 와글와글 법석을 떠며 소란의  피워대는 아이들을 문득 느꼈다.


그는 펴지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주소와 이름을 보면서, 밥사발에 부어 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며 소리쳤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에 취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다 때려 부쉈으면 좋겠어!"


"고주망태가 돼서 난동을 부리고 싶다니, 그러면 저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


마누라가 그렇게 대꾸했다.


그는 마누라의 둥그런 뱃속에 들어있는 일곱번째 아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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