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일본역사의 이해

[스크랩] [185] 소비를 싫어하는 세대, 일본경제의 또 하나의 毒인가?

지영 센세 2010. 12. 18. 20:11

소비를 싫어하는 세대, 일본경제의 또 하나의 ()인가?

2010 1213()/ 곽 경훈의 이야기 일본경제’ (185)

 

한국인은 한글보다 훨씬 오래 사용해 온 漢字를 철저히 홀대(忽待)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한자가 외국글자라는 관념조차 없을 정도이다. 그런 한국인이 일본인을 만나면 한자는 우리가 너희한테 전해 준 거야라는 별 의미도 없는 우월감 섞인 멘트를 날리고 싶어한다. 오늘날 한국인이 현대 한국어로 사용하는 헤아릴 수 없는 한자말들이 일본제임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인지.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일본제 한자말들이, 그런 줄도 모르고 속속 한국어 속으로 기어들고 있다는 사실. 예를 들기도 어렵지 않다. 비록 유행어이었지만, 초식남(草食男)이니 육식남이니 하는 말들도 그러하다. 한국과 관련하여, 한국을 싫어한다는 혐한(嫌韓), 쑥쑥 크는 중국을 두려한다 하여 한국인의 공중증(恐中症)이란 말도 일본 미디어에 등장했다. 듣고 보면 어렵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최근의 어느 일본 미디어는, 일본경제와 관련하여, 일본 젊은이들의 ()소비 현상이란 것을 다루었다. ‘소비소비 싫어하기이다. 이 용어는 이미 작년 11월에 ()소비 세대의 연구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쓰다 히사카즈 ). 이 책에서 저자는, 혐소비를, 수입이 있더라도 소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현상이 서른 전의 젊은이들 사이에 현저하다고 주장한다. 일본경제의 버블 절정기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와 같은 혐소비가, 취직도 안 되어 수입도 별로 없는 저소득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괜찮은 데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여 일하는 젊은이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 

 

그러고 보면 이 몇 해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자동차를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급 오디오를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해외여행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말이 줄기차게 들려온 게 사실이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오토바이의 王者로 등극했던 혼다의 말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젊은이들의 憧憬(동경)이요 중년 부대까지 전국을 누비던 오토바이 붐이 수그러져, 현대 연간 오토바이 판매량은 과거 피크 때의 1/10 (!)로 곤두박질쳤다는 것이다. 절반이나 1/3도 아니고 1/10이다! 일본경찰의 오토바이 폭주족 검거 수법은 실로 기상천외한 것들이 다수 등장했었다 (아마 한국경찰이 지금쯤 열심히 벤치마크 하고 있을지도).

 

현대 일본어에는 內食이란 말도 있다. 아직 한국어에는 없지만, 언제라도 한글로 내식이란 말이 슬그머니 한국어 속에 섞여 쓰일지 모른다. 이 말도 한 번 들으면 금세 알아먹을 말이다. 외식의 반대말! 집 안에서 식사하는 게 보통이던 때에 나가서 먹는 특별한 일을 두고 外食이란 말이 만들어져 쓰였겠거니와, 요즘의 그 혐소비 세대는 외식 아닌 내식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술마시기도, 그 많은 이자까야도 좋지만, 친구들 모아 집안에서 마시는 이에노미(家飲)가 새로운 풍속으로 등장해 있다. 그러니, 일본의 그 많은 이자까야 체인점들이 아직도(!) 육식기질 왕성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강남이나 신촌, 홍대 앞을 점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혐소비가 주목할만한 현상으로 자리잡게 됐는지 그 경위는 사회학자의 전문분야이거니와, 경제학적 관점으로는, 작금 일본경제의 쇠약함과 직결되는 현상의 하나로 빠트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젊은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일본의 소비자들은, 특히 리만 사태 후의 심각한 불황 속에 고용위기를 체험하면서 극도로 소비를 자제하고 있다.

 

2009년 여름에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가계의 소비지출을 늘리기 위해 자녀수당의 지급, 고속도로 통행료의 무료화 (현재 거의 좌절된 상태), 고교 수업료 공짜 등을 어떻게든 시행에 옮기고 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현금을 건네 받은 사람들이 적극 소비에 나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비부양과 친환경 산업 촉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에코 포인트제도가 일정부분 주효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야말로 포인트나 쿠폰 활용의 차원으로 설명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운데, 소비성향이 높아야 할 젊은이들 사이에 ()소비의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일본의 산업과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소비진작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로서도 실망스러운 현상이고, 디플레 탈피에 안간힘을 쏟는 중앙은행의 앞길에도 어두운 그늘이다.

 

절약과는 명백히 다른 이른바 혐소비. 버블 세대가 보기에는, 스스로가 겪고 누려 온 버블에 대한 반성의 시각에서, 그러한 혐소비가 쿨한 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과잉소비라는 미국경제, 그리고 앞으로 더욱 대량소비로 나아갈 중국경제, 소규모이지만 다이나믹한 소비로 활기를 띠는 한국경제를 곁에 두는 일본경제는 이러다가 자칫, 더욱 맥이 빠지는 게 아닐까? 기업들도 이미, 엔강세 등을 이유로 국내에서 소비하기 (= 설비투자)를 꺼려 현예금을 쌓거나 해외로 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

 

 

 

출처 : 곽 경훈의 데일리 리포트 "일본은 지금"
글쓴이 : 가꾸사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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